[산티아고 여행기①]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산티아고 여행기①]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 데일리타임즈W 이예림 기자
  • 승인 2019.11.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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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에게 한 달간의 특별 휴가가 주어진다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누적된 업무 피로감을 어떻게 풀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커피 한잔하면서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운동을 하며 땀으로 진한 스트레스를 배출할 수도 있다. 그밖에 일과 일상의 온도차를 줄이기 위해 소소하게 퇴근 후 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혼술, 혼밥, 혼영…. 요새 혼자 하는 게 유행이라는데? 평소 혼자 얕고 넓게 배우기 좋아하는 이 과장이 퇴근 후 취미 탐색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그 첫 시작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될 줄이야! 평범한 직장인의 특별한 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 년 전, 우연히 영화 ‘더 웨이(The Way)’를 본 뒤 산티아고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만 먹었다 뿐이지 실행에 옮기기까지 쉽지 않았다. 정보를 검색하니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지금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쉬이 산티아고행을 결정지을 수 없었다. 직장인에게 한 달의 휴가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 후 돌이켜 보니 돈은 아껴 쓰면, 시간은 만들면 될 일인데! 어쩌면 스스로 기회를 버려가며 긴 시간 동안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보다는 갈 수 없는 핑계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은 적절한 때가 있다
안 좋은 일들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누군가 그랬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맞은 연애의 끝을 시작으로 총천연색의 스트레스가 줄줄이 사탕처럼 꿰어져서 눈앞에 투척됐다. 널려있는 일들을 무엇부터 해결해야 하나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결국 오래된 노래 가사처럼,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이 퇴근길에 툭하고 눈물이 줄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잡념에 뇌가 포화되니 잠은 사치일 뿐. 그동안 ‘제발 살아 빠져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는데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는 실연인가? 아, 이러다가 조만간 관하나 짜겠다 싶었다. 나약한 의지로는 지금의 상황이 극복이 안 되니 주변 환경이라도 변화를 주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처음엔 산티아고를 생각하지도 못했다. 대표님께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 달의 휴가를 신청하고, 한 달 살기로 유명한 두 곳 치앙마이와 포르투를 두고 고민했다. 가만히 지도를 보고 있자니 포르투갈 위가 순례길 종착지인 산티아고였다. 그래 이거야! 바라는 것은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예상치 못한 특별한 휴가에 산티아고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엄마와 함께!

tvN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 / 사진=tvN 홈페이지
tvN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 / 사진=tvN 홈페이지

왜 사람들은 산티아고에 열광하는 걸까

올해 유명한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TV 속의 순례자들은 힘들어 보였지만 얼굴만은 평온해 보였다. 오랜만에 마주한 따듯한 한식 앞에서 웃는 모습이 순수해 보이기까지 했다.

2018년 외국순례자 비율. / 사진=필그림 리셉션 오피스의 공식 웹사이트
2018년 외국인 순례자 비율. / 사진=필그림 리셉션 오피스의 공식 웹사이트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스페인 현지에서 한국 사람들을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하루는 눈앞에 보이는 길의 끝까지 모두 한국인이 점령했던 적도 있었다. 이런 풍경이 펼쳐질 때마다 엄마는 ‘여기가 청계산이야 스페인이야’라는 말을 자주 내뱉곤 했다. 외국인 순례자들도 의아했던지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궁금해했다. 순례자 사무소 공식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순례길을 걷기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 순례자 중 한국인의 비중이 3.09%(5665명)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순위권에 들었다. 동양권 국가로는 1위이다. 짐작건대 2019년에는 그 수치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삶이 팍팍해서였을까? 아니면 TV 프로그램을 보곤 유행처럼 휩쓸려 오는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됐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순례길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온다는 점이다.

순례길 위의 엄마와 나. / 사진=이예림 기자
순례길 위의 엄마와 나. / 사진=이예림 기자

60대 엄마와의 첫 유럽행

이번 여행은 특별했다. 나 홀로 여행에서 벗어나 엄마와의 첫 장기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엄마는 처음에 내켜 하지 않았다. 무슨 여행을 한 달이나 하냐며 손사래를 쳤다. 혹여나 비용이 부담이 될까 돈 걱정은 하지도 말라며 설득을 했다. 이렇게 불도저처럼 여행을 밀어붙였던 이유는 문득 앞으로 엄마와 단둘이 여행할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올해 환갑을 맞은 엄마가 육십 평생 살아오며 가슴에 담았던 묵직한 것들을 조금이나마 길 위에 버리고 오길 바랐다. 그러면 엄마도 나도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잘 걸을 수 있을까’였다. 우리의 저질 체력으로는 순례길을 모두 완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카페에 일정에 대한 조언도 구해봤지만 60대 엄마와 함께라면 무리할 이유가 없다고 결정했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첫 유럽여행이 걷는 일정만 가득하다면 호적에서 강제 퇴출당할까봐 관광 일정을 추가하기로 했다.

산티아고 ‘프랑스 길‘ 코스. / 그래픽=게티이미지
산티아고 ‘프랑스 길‘ 코스. / 그래픽=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이라면 어떤 코스로 가는 게 좋을까

순례길 코스는 참 다양하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길이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해서 목적지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 이상을 걷는 코스이다. 예전엔 기나긴 이 길을 걷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어진 시간이 10일밖에 없다면 10일만 걷다가 다음에 와서 이어서 걸으면 될 일이다. 꼭 남들과 똑같이 걸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게 맞는 길을 찾으면 됐다.

프랑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발급받은 순례자 여권. / 사진=이예림 기자
프랑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발급받은 순례자 여권. / 사진=이예림 기자

순례길을 걷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생, 은퇴자, 퇴사자처럼 시간 여유가 많은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리 같이 휴가를 쓰고 온 직장인이라면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약111Km) 넉넉히 일주일 정도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추천한다. 유럽 주변 국가 학생들도 수학여행으로 많이 올 정도로 험난한 코스도 아니거니와 순례길을 완주했다는 증표인 완주증도 사리아부터 발급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시리아 구간만 일주일 걷기에는 못내 아쉬울 것 같았다. 사리아부터는 분위기가 상업적으로 많이 바뀐다고도 했다. 그래서 첫 시작의 설렘을 다른 순례자들과 나누고 싶어서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 중간중간 도시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건너뛰며 약 2주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폰세바돈과 폰페라다 구간 사이에 위치한 ‘철의 십자가’를 꼭 방문하고 싶어서 도시 이동에 버리는 시간이 많더라도 이 일정을 강행했다.

순례길 일정
-프랑스 생장~스페인 팜플로나(약 69Km)
-폰세바돈(철의 십자가 구간)~폰페라다(약 28Km)
-사리아~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약 113Km)

총 210Km 정도를 걸은 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2박 3일을 머물며 세상의 끝이라는 피스테라와 무시아를 가보고, 포르투갈 포르투 5박 6일, 스페인 시체스 1박 2일, 바르셀로나 3박 5일, 아랍 에미레이츠 아부다비 2박 3일 여행을 하는 일정이다. 기대감을 안고 떠난 한 달간의 특별한 휴가. 기다렸던 9월 22일. 오랜만에 가슴 떨림을 느끼며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졌을까?
 
 >>[산티아고 여행기②]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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