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초심 잃지 않았던 '1세대 여성운동가'
이희호 여사, 초심 잃지 않았던 '1세대 여성운동가'
  • 뉴스1 전형민 기자
  • 승인 2019.06.11 0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향년97세)가 10일 별세했다. 사진은 2016년 9월 7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이희호 여사. (뉴스1 DB)2019.6.10/뉴스1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기 전에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긴 고난의 세월을 지나온 민주화 투쟁 '동지'이자 '조언자'였다. 또한 '1세대 여성운동가'로 마지막 순간 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여성의 권익 향상에 이바지한 삶을 살았다.

이 여사는 수년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김 전 대통령의 뒷바라지뿐만 아니라 남편을 대신해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이 여사의 자서전 '동행: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판기념회 당시 "사실 결혼 46년 동안 제대로 가사 일을 도와준 적이 없었다"며 "제가 수많은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아내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을 때 힘과 능력을 주고 내조를 잘해주었던 이도 아내"라고 말한 바 있다.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대·서울대를 거쳐 미국 스칼릿 대학원을 졸업했고, 귀국 후에는 이화여대에서 강의하는 등 당대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인텔리였다.

이 여사는 유학 후 귀국해 이화여대 강사, 여성문제연구원 간사, 대한여자청년단(YWCA)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간사 등 1세대 여성운동을 했다.

그러다 1962년 41세의 나이로 2살 연하이자 '정치 낭인'에 가까웠던 김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결혼을 통해 이 여사의 생애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결혼 다음 해인 1963년 11월 26일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의욕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치는 김 전 대통령의 뒷바라지를 위해 신문을 샅샅이 읽고 정책 제안에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스크랩하고 제안했다.

특히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장점을 살려 '코리아타임즈'와 '뉴스위크' '포린 어페어스' 등 영어 신문과 잡지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국제정세에 뒤처지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김 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국제사회에 구명을 요청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72년 유신 선포 당시 지병 치료차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김 전 대통령의 해외 반유신 활동을 인편으로 오가는 서신을 통해 지원하고 독려했다.

같은 해 12월 19일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첫 편지에는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을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라며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고…"라며 독려했다.

유신정우회가 선출된 1973년에는 편지에 "이번 선거를 통해 당신은 더 깊이 국민의 가슴속에 심어졌다고 봅니다. 심지어 인쇄물에까지 당신의 이름을 기재했어요"라고 '유신정우회' 선거에서 나타난 현상을 소개하며 김 전 대통령의 용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계엄사령부에 의해 조작된 내란음모 사건으로 몰려 군사재판에 회부, 사형을 2년여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에도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로서 면모를 보였다.

김 전 대통령은 이 기간 600여권에 이르는 책을 읽었고, 다방면의 독서를 통해 언어와 역사에서 경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지식과 상식을 두루 쌓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향년97세)가 10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의례하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새정치연합 전북도당 제공) 2019.6.10/뉴스1

 

 


결혼 후 평생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또 다른 한 명의 민주화 투사로 살았던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를 두고는 의견을 달리했다.

이 여사는 자신의 평전 '고난의 길, 신념의 길'에서 "남편이 (제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한다고 했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정말로 간절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야 하니까"라면서도 "그런데도 정치를 다시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대했다"고 했다.

이어 "(은퇴는) 국민과 한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나는 남편의 간절한 소망을 결국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소개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에도 70대 후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결식아동을 돕는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을 발족하는 등 역대 어느 퍼스트레이디보다도 소외 계층의 복지 등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여성 권익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젊은 시절 초심을 잃지 않고 김 전 대통령의 정책공약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을 위한 대책을 도왔으며, 이는 곧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여성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 여사는 2002년 5월 유엔 의장국이었던 대한민국의 대표로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이 총회에서 이 여사는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한 최초의 여성이다.

이 여사는 생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며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2009년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야권이던 민주당 등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민주 진영의 대모이자 민주화 운동 세대의 큰 어른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다만 말년에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하며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처럼 이 여사는 1세대 여성 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의 투사, 김 전 대통령의 동지이자 가장 강력한 조력자였다고 주변 사람들은 회고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